본문 바로가기
Info/어휘와 어원

의령 남씨 항렬표와 역사

by 하양동백 2023. 12. 5.

목차

    의령 남씨의 역사와 항렬표

    의령 남씨의 기원과 발전
    의령 남씨(宜寧 南氏)는 한국의 전통적인 성씨 중 하나로, 경상남도 의령군을 본관으로 한다. 이 성씨는 약 16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역사는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조 남민(南敏), 본명 김충(金忠),은 당나라의 여남(汝南) 출신으로, 755년 경덕왕 14년에 당나라 안렴사로 일본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신라의 영덕군 축산면에 도착했다. 신라 경덕왕은 그를 남(南)씨로 사성하고 이름을 민(敏)이라 명명했다. 이후 영양현을 그의 식읍으로 삼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남민의 후손 중 홍보(洪甫)는 영양에서, 군보(君甫)는 의령에서, 광보(匡甫)는 고성에서 각각 관적을 했다. 특히 남군보(南君甫)는 고려 충렬왕 때 밀직부사를 지내며 의령 남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조선시대 의령 남씨의 발자취

    조선 개국 후, 의령 남씨는 여러 명의 중요 인물을 배출했다. 남재(南在)는 조선 개국공신 1등에 녹훈되었으며, 영의정까지 올랐다. 그의 손자 남지(南智)는 좌의정이 되었고, 남휘(南暉)는 태종의 부마가 되었다. 남곤(南袞)과 남이웅(南以雄)도 영의정에 오른 바 있다. 남구만(南九萬)은 소론의 영수로서 영의정에 오르기도 했다. 남유용(南有容)은 영조 때 대제학을 역임했으며, 그의 아들 남공철(南公轍) 역시 순조 때 영의정을 지냈다.

    의령 남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46명, 상신 6명, 대제학 6명을 배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의령남씨 분적과 의령남씨 항렬표

    의령 남씨의 분적은 다음과 같다:

    • 영양 남씨(南氏): 남민의 7대손 진용의 장남 남홍보
    • 의령 남씨(南氏): 남민의 7대손 진용의 차남 남군보
    • 고성 남씨(南氏): 남민의 7대손 진용의 3남 남광보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의령 남씨의 항렬표는 그들의 조상과 후손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사적 문서로서 그 가치를 지닌다. 항렬표는 각 세대를 대표하는 이름을 정리한 것으로, 가문의 역사를 이해하고 계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의령남씨 항렬표

    26世 기(基)○ 27世 ○현(鉉) 28世 윤(潤)○ 29世 ○식(植) 30世 병(炳)○ 31世 ○균(均) 32世 진(鎭)○ 33世 ○구(求) 34世 주(柱)○ 35世 ○섭(燮)
    36世 규(圭)○ 37世 ○호(鎬) 38世 순(淳)○ 39世 ○근(根) 40世 영(榮)○ 41世 ○찬(瓚) 42世 종(鍾)○ 43世 ○수(洙) 44世 정(禎)○ 45世 ○엽(燁)
    46世 주(周)○ 47世 ○일(鎰) 48世 영(永)○ 49世 ○표(杓) 50世 형(炯)○ 51世 - 52世 - 53世 - 54世 - 55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7世孫은 26代孫)

    의령 남씨의 항렬표는 그들의 뿌리와 성장, 변화의 역사를 담고 있으며, 후손들에게는 가문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자부심을 갖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의령 남씨는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그들의 항렬표와 역사는 한국 전통 사회의 복잡한 가계와 역사적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이 가문의 역사는 한국 문화와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