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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직장과 경제

조선시대 관료 월급 공무원 봉급, 관료 채용규모 휴가 근무시간

by 허연동백hipublic2020 2023. 7. 20.

목차

    조선 관료 채용규모, 휴가, 근무시간

    조선시대 공무원은 권력과 명예를 상징하는 중요한 직업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조선시대 공무원의 채용규모, 휴가, 근무시간 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조선시대 공무원의 채용규모

    조선시대의 인구는 현재의 10% 수준이었으며, 약 500만 명 정도였습니다. 이 중 양반은 초기 10%를 차지하며 약 50만 명이었습니다. 그중 관리(관료)는 군인을 합해도 5000명 이하였기 때문에 다른 직업이 없는 상황에서 관료는 모든 것의 알파와 오메가였습니다. 즉, 전 인구의 1%가 공무원이자 직업인이었습니다. 채용 숫자도 요즘 7급 이상이라고 볼 수 있는 자는 왕조 500년간 1만 5000명으로, 한 해에 약 30명 정도가 채용되었으며, 고시에 해당하는 문과는 평균 한 해에 10명 이내로 선발되었습니다.

    2. 조선시대 공무원의 월급 체계

    당시 공식적인 법률인 <대전회통>에 따르면, 조선시대 공무원들의 월급은 쌀과 콩으로 주어졌습니다. 매월 영의정은 25일, 말단은 30일에 급여가 지급되었습니다. 당시의 쌀과 콩의 가치는 현재의 가격 체계와는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금액을 알기 어렵지만, 대체적인 급여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쌀은 모든 재화의 가치 판단의 표준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환산은 국산 우량미 기준으로 하여서 時價를 평가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쌀의 가치는 현재 쌀값의 3-4배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를 들어, 노비의 월평균 임금으로 약 40kg의 쌀을 받았다면, 현재로서 약 12만 원 정도의 가치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총리의 월급은 약 600만 원, 말단 9급 동사무소 직원은 약 200만 원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현재 국무총리 월급이 1600만 원이고 9급 1호봉 기본급이 170만 원인점을 감안하면, 조선시대 월급 격차가 훨씬 적었다는 말도 안 되는 계산이 나오네요.

    3. 출장비와 혜택

    조선시대 공무원들은 출장 시에도 적절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서울에서 부산 출장 시 장관급 공무원은 거의 500만원 정도의 출장비를 지급받았습니다. 이 비용은 호송인원 10여 명이 7일 이상 말을 타고 가면서 먹고 자는 돈 등의 경비를 포함하였습니다. 또한 공무원들은 중식 제공은 없이 두 끼만 먹었으며, 화장실은 경복궁 경우 28개가 있었으며 왕과 왕비는 이동식 매화틀 변기 담당이 있었습니다.

    4. 휴가와 근무시간

    조선시대 공무원들은 현재와 비슷한 근무시간을 가지고 있었으나 겨울에는 조기 퇴근이 있었습니다. 휴가는 일년에 약 20일 정도로, 현재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많은 휴가일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60일가량 쉬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공무원은 거의 모든 명예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채용규모가 작고 경쟁이 치열한 직업이었습니다. 월급은 당시의 쌀과 콩으로 주어졌으며, 출장비와 휴가 혜택 등도 제공되었습니다. 현재와는 상이한 급여와 환경이지만, 그 시대의 사회적 상황을 고려할 때 그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직업이었는지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 포스트는 조선시대의 공무원에 대한 역사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현재의 급여와 환경과 비교하기 위해 일부 가정을 사용하였으며, 정확한 데이터는 조선시대의 기록과 현대 연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관료 월급과 공무원 봉급

    조선시대에는 관료들이 받던 월급인 녹봉과 현재의 공무원 봉급을 비교해보겠습니다. 녹봉은 '녹(祿)'과 '봉(俸)'으로 구분되며,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녹(祿)과 특수한 경우 지급되는 봉(俸)을 합친 말입니다. 조선시대의 녹봉 제도는 조선 왕조 5백여 년간의 전통적인 관료제도로서 역사적으로 근대적 변화를 겪었습니다. 현재의 공무원 봉급은 적극행정 새 바람이 불어나면서 파격적인 성과에 따라 보상을 받거나 징계를 받는 체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녹봉 체계

    조선시대 녹봉은 고려시대의 녹봉제를 계승하여 규정되었습니다. 최하 관직인 9품의 경우 1분기에 쌀 2석(약 80kg)과 콩 1석(약 40kg)을 월급으로 받았습니다. 이때, 쌀 1석은 '섬'이라는 부피 단위로 계산되었습니다. 녹봉은 관료들에게 실질적인 급여였으며, 쌀과 콩 등 현물로 지급되었습니다.

    현재의 공무원 봉급 체계

    현재의 공무원 봉급은 호봉제와 연봉제로 구분됩니다. 5급 이상은 연봉제를 적용받으며, 정무직은 고정급적 연봉제, 고위공무원단 소속 공무원은 직무성과급적 연봉제, 1~5급 공무원은 성과급적 연봉제를 받습니다. 6급 이하 공무원은 호봉제의 적용을 받습니다. 현재의 공무원 봉급은 적극행정 새 바람에 따라 파격적인 성과에 따라 보상을 받거나 징계를 받는 체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관리 월급 비교

    조선시대의 녹봉은 당시 경제 규모와 쌀의 가치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당시 쌀 1석은 현대의 3~4배 가치를 가지고 있었으며, 최하 관직인 9품의 경우 월급으로 쌀 2석과 콩 1석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통화로 환산하면 9품 관리의 월급은 약 12만 원 정도입니다.

    현재의 공무원 봉급은 호봉제와 연봉제로 나뉘며, 최고 관리인 총리의 월급은 약 1600만원, 9급 공무원인 동사무소 직원의 월급은 약 170만 원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봉급 체계는 조선시대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안정적이며, 성과에 따른 보상과 징계 등의 체계가 적극적인 공무원 활동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공무원들의 녹봉(월급)과 현대 공무원들의 월급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시대 녹봉:
    - 최말단 종 9품까지 차등 지급.
    - 임진왜란 이전까지 정 1품과 종 9품의 녹봉 차이는 3배 정도.
    - 전쟁 이후 녹봉이 감소하여 정 1품의 녹봉은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약 2억원.
    - 종 9품의 녹봉은 녹봉만으로는 생활하기 어려울 정도로 줄어듦.

    현대 공무원 월급:
    - 호봉제와 연봉제로 구분.
    - 9급 공무원의 경우 1호봉으로 약 170만 800원.
    - 높은 관직일수록 월급이 상승하며, 성과에 따라 보상과 징계도 있음.

    비교:
    - 조선시대 공무원의 녹봉은 쌀과 콩으로 지급되었으며, 정 1품의 녹봉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약 2억 원이 될 정도로 상당한 금액이었습니다. 하지만 높은 직위의 공무원에게만 해당되었으며, 전쟁과 기근으로 녹봉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관리들은 적은 녹봉을 받았고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 현대 공무원은 호봉제와 연봉제로 월급이 결정되며, 9급의 경우 1호봉으로 약 170만 800원을 받습니다. 높은 관직일수록 월급이 상승하며 성과에 따른 보상과 징계도 있습니다. 현대 공무원의 월급은 조선시대에 비해 훨씬 안정적이고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조선시대 공무원의 녹봉은 높은 직위의 관리들에게만 상당한 금액으로 지급되었으며, 일반적인 관리들은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현대 공무원의 월급은 호봉제와 연봉제로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며, 성과에 따라 보상과 징계가 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면 더욱 높은 월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관료 월급인 녹봉과 현재의 공무원 봉급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조선시대 녹봉은 당시 경제 규모와 쌀의 가치에 따라서 현재의 통화로 환산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현재의 공무원 봉급은 적극행정 새 바람에 따라 파격적인 성과에 따른 보상과 징계 등의 체계가 도입되어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업무 수행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국가 발전과 공무원들의 안정된 녹봉(월급)을 위해서는 계속해서 현대적인 관료 체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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